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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원고

YMCA운동의 형성 원리를 찾아서 6 -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지역과 전 지구적 의제의 통합과 통섭

by yunheePathos 2014. 9. 3.

YMCA운동의 형성 원리를 찾아서

말씀은 스스로 존재한다. 

  


들어가며

1. 시대 상황(Context)으로부터 시작하는 보편적인 운동

2. 에큐메니컬 정신운동체 정신가치사회적 영성

3. 청년 운동체 변화의 꿈사람을 키우는 운동

4. Volunteerism에 기초한 Association 운동

시민사회를 확장하는 운동운동을 만드는 운동

5.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지역과 전 지구적 의제의 통합과 통섭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나님의 평화

6. 결론 삼아



 

5.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지역과 전 지구적 의제의 통합과 통섭

: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나님의 평화

 

한국YMCA는 창립 초기 외국 선교사들의 필요성과 자립자강의 원리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당대 청년들의 필요성이 만나면서 형성되었다. 이런 필요성으로 만들어진 것이 배재학당YMCA(19019)이었고, 5개국의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이 참여해 만들어진 것이 황성기독교청년회(19031028)였다. 이와 같은 주객관적인 필요성과 당시 주변 열강의 침략과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 그리고 초기 YMCA 지도부가 국제적인 선교사들과 인사들이라는 측면에서 한국YMCA운동은 국제적인 맥락에서 설명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윤치호 등 한국YMCA 인사들이 1910년 에딘버러(Edinburgh) 선교대회에 한국을 대표하여 최초로 참가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학생YMCA1922년 세계기독학생총연맹(WSCF)에 한국 SCM을 대표하여 가입하게 되고 국제학생기독운동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창구가 된다. 또한 학생YMCA 출신들은 선교사들을 통해 외국 유학을 경험하며 이후 전국적으로 추진되었던 협동조합을 통한 향촌Y운동과 해방 이후 토지 개혁의 모태가 되었던 농촌 개혁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국제적 네트워크로서 YMCA와 현장의 통합이라는 Y운동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YMCA운동을 지역 현장에 근거한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설명하는 맥락이다. 전 지구적 생각과 지역에 기반한 활동, 지역적 사고와 전지구적 활동의 통합체,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YMCA운동의 원리이다. 세계YMCA는 현재, 에큐메니컬운동의 모태로 시작되어 현재 119개 나라에서 서로 협력하며 활동하고 있는 민간 영역의 최대 국제조직 중 하나이며 UN과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의 공식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몇 가지 측면에서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YMCA운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특히나 지구 온난화, 빈곤, 노동의 이주, 자원 쟁탈, 전쟁 등 초국적 자본의 지배질서가 획일화되고 이에 따른 산업과 과학문명의 문제가 지구 시민사회 공동의 문제로 등장한 이 때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YMCA운동의 재구성이 요청되고 있다.

우선, 한국YMCA가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준비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한국YMCA는 세계YMCA 운동사에서 독특한 성장 배경을 갖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나라가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는 서구 제국의 식민지 경험에서 이식된 친교 중심의 조직체였다면, 한국YMCA는 식민지를 거부했던 운동체라는 역사적 경험이다. 이것은 지금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서구 제국의 관점이 아니라 약자의 관점에서 제기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3세계와 서구 제국을 연결하고 조정할 수 있는 역사적 권위를 한국YMCA는 갖고 있다. 패권과 힘에 의한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약자의 연대와 정의에 기반한 하나님의 평화를 한국YMCA는 말할 수 있다. 강자의 평화가 아닌 약자의 평화를.

그러나 한국YMCA는 이와 같은 훌륭한 역사적 유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이에 걸맞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YMCA라는 국제네트워크를 활용한 아젠다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 에큐메니컬운동의 의제 또한 적극적으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과 전 지구적 의제의 통합과 통섭이 단절된 채 단순한 교류와 협력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두 가지의 문제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는 재원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지도력의 문제이다. 세계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 없다는 것이 하나의 문제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지도력을 육성해 오지 못했다는 것이 두 번째다. 한국YMCA는 해방 이후 외원에 의존했던 체질에서 그 형태가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 본질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자원과 호흡하며 YMCA의 메시지로 깊은 수원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미 미국YMCA 스스로 벗어던진 건물 중심의 기구 경영에 지금도 발이 묶여 있다. 이것은 1950년대 미국YMCA의 뿌리 깊은 부정적 유산이다. 이로 인해 한국YMCA는 아직도 기존 틀에 갇힌 채 스스로 재원과 자립의 물적 토대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건물과 외원 중심으로 체질화된 운영방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만이 생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채 사라진 거대한 공룡의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몇 몇 대도시 방식의 건물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새로운 발상과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제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흐름을 읽고 이를 적극적으로 개척해갈 수 있는 지도력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YMCA는 지구시민운동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 소중한 역사적 자산과 국제 네트워크,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제 단순한 교류와 협력사업 중심에서 벗어나 지구 시민사회의 의제를 한국 시민사회의 현장과 조응할 수 있는 통찰력과 한국 시민사회의 의제를 지구 시민사회의 의제로 네트워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한다. 지구시민사회의 평화 의제에 정확히 조응하고 대응하며 이것을 이끌고 갈 리더십을 육성하는 섬세한 노력이 요청된다. 지구시민운동체로서 한국YMCA운동이 갖고 있는 훌륭한 밭에 작은 씨앗을 준비하는 자가 결국 한국YMCA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을 깨우게 될 것이다. 한국YMCA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제안되고 있는 생명평화센터의 역할이 소중한 이유다.

또 하나는, 근대 이후 한국YMCA가 서구의 가치 체계와 문화의 일방적인 전파 수단이 되지 않았나 하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물론 한국 기독교와 YMCA가 제국의 총부리에 의해 이식된 것이 아니라 청년 지식인들에 의해 주체적으로 수용되었고, 교육과 산업, 스포츠 등 서구 근대화된 문물을 통해 개혁적이고 근대화된 세력을 형성했다는 측면은 여타 3세계와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민사회의 일천하기만 정신사와 문화사의 현실은 한국YMCA의 역할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사회는 19세기 말 이후 한국 사상사와 정신사가 주체적으로 현대화되지 못하고 그 자취조차 찾기 쉽지 않다. 또한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 시기 친일, 부일세력을 재등장시키고 극우적 반공주의와 미국 중심주의 사고를 잉태한 일말의 책임은 없는가 자문할 필요가 있다. 100년의 한국YMCA운동사에서 소중히 다뤄야할 부분이며 그 과오에 대해 겸허히 지적되고 성찰되어야 할 사안이다.

초기 한국YMCA운동은 식민지 정복과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었던 민족국가 단위의 세계화 시기 가운데 길을 찾았다. 지금의 지구화는 다층적이다. 전반적으로는 민족국가를 약화시키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강화되기도 하며 생명과 문명의 문제가 일국의 문제에서 전 지구적인 문제로 전면화되는 시기이도 하다.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1YMCA운동의 목표가 민족자주국가 수립이었다면, 2기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YMCA운동의 목표는 전지구적인 평화와 생명의 전기를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한국YMCA는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이제 지구시민운동체로서 한국YMCA운동의 정체성과 역할을 정립해가는 과정은 한국 정신사에 기반한 보편적 정신 운동체로 한국YMCA운동을 가다듬어가는 일일 것이다.

 

결론 삼아

 

한국YMCA운동을 지금 말한 다섯 가지로 설명하는 일은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의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YMCA운동을 이해하고 구상하는데 필요한 일면의 정답과 작은 밑돌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기대한다. 학생기독운동을 시작으로 한국 시민사회운동을 생의 일부로, 그리고 보편적 운동으로서 에큐메니컬운동가로 살고자 했던 여행의 한 자락에서 나누고자 한 것은 말씀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스스로 운동하며 우리 안에 사랑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사랑으로 YMCA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YMCA라는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의 우주로 우리를 이끌 수 있기만을 기도한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도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심은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심이라.

주께서 나를 보내심은

포로된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자들에게 눈 뜨임을 선포하며

눌린 자들을 놓아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


☆ 한국YMCA한국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로교의 언더우드(1844, 미국 장로교 파견, 새문안교회)한국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인 아펜젤러(1885, 영국 태생으로 미국으로 이민, 미국 감리교 파견, 정동교회) 그리고 게일(카나다 장로교 파견, 황성기독교청년회 초대 이사장, 연동교회 창립)에 의해 물적, 인적 영향을 받는다. 이들에 의해 한국YMCA는 지금의 연세대학교, 배재대학교, 새문안교회와 정동교회, 연동교회 등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세 사람은 성경은 한글로 번역하여 소개하였으며, 게일은 <구운몽>, <춘향전> 등 한국 고전을 영어로 번역 소개하기도 한다.  

 신흥우는 감리교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 출신으로 배대학당Y를 창립하는데 기여하고 1903년 남가주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미국에서 경험했던 사회복음주의 노선을 한국사회에 적용하고자 했다. 이것은 전통적인 도시Y운동을 당시 한국사회의 90% 이상의 인구를 차지하던 농민들과 함께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한국Y를 농촌Y로 바꾸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1925년 농촌부를 신설하고 협동조합운동 추진 4년차인 1929의 보고에 따르면, YMCA 촌락 227개 부락, 야학생 10,507, 협동조합 22, 농민회 82개를 조직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후 신흥우의 사회복음주의 노선은 흥업구락부운동과 적극신앙단운동 등으로 전개된다.


한국YMCA전국연맹과 성공회대학교의 공동 협력 과제 모색을 위한 워크숍’(2013년 10월 5오전 9시 30~12한국YMCA전국연맹 1층 회의실)에서 “YMCA운동의 형성원리와 시민사회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발표한 내용을 ‘YMCA운동의 형성원리와 관련된 부분만을 수정보완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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