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한중일YMCA 평화포럼 폐회예배 설교]
2017.12.16-20, 광주 프라도호텔
평화를 선택하라
장관철 목사
(광주YMCA 이사, 선교위원장, 광주무진교회 담임목사)
성 경 : 이사야 11:1-9(구약 980쪽)
*이사야 11:1-9*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2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시니,
3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재판하지 않으며,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결하지 않는다.
4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을 바르게 논죄한다. 그가 하는 말은 몽둥이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가 내리는 선고는 사악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5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는다.
6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7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8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평화를 꿈꾸어 왔으나, 온전히 평화가 실현된 역사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반대로,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분쟁, 싸움과 갈등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의 역사도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에덴 이후의 세계는 형제간의 갈등의 역사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형제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헤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장자권을 둘러싼 싸움으로 인해 오랜 반목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을 미워하여 구덩이에 가두었다가 노예로 팔아버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전쟁과 분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의 남북 간에도 전쟁의 위험이 높아만 갑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나라들 사이에도 평화보다는 갈등이 깊어져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를 노래해야 하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평화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과 앗시리아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던 조국의 운명을 늘 안타까워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었지만 이사야는 평화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민족들의 운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믿었기에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약소국들을 억압하는 강대국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면서도, 또한 그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었습니다.
이사야 19장 23-24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날이 오면,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이 생겨, 앗시리아 사람은 이집트로 가고 이집트 사람은 앗시리아로 갈 것이다. 이집트 사람이 앗시리아 사람과 함께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이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말도 되지 않는 꿈이지만 이사야는 그 꿈을 차마 버릴 수 없었습니다. 꿈을 버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평화도 스스로 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평화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땀과 눈물 헌신을 통해 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어놓은 모든 경계선을 무너뜨린 분이십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의인과 죄인, 성과 속 사이에 길을 내어 서로 소통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주신 그 길을 우리가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꿈꾸는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평화로운 공존입니다. 강하다고 하여 약자를 함부로 해치거나 파괴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함께 손잡고 우정을 나누며 평화의 관계를 맺어가는 세상입니다.
이사야 11:6-9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한.중.일 YMCA 평화포럼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도 이사야가 꿈꾸었던 세상을 함께 꿈꿉시다. 이사야 선지가가 꿈꾸었던 세상은 그냥 저절로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호하고 담대하게 평화를 선택하는 주님의 자녀들의 용기를 통해서 이사야가 꿈꾸었던 평와의 세상을 우리에게 찾아 올 것입니다. 평화를 선택할 때 핍박도 받고, 조롱도 당할 것입니다. 어리석다고 손가락질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당시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핍박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마태복음 5:9)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어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삶은 곧 하늘나라의 삶을 미리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늘나라를 사는 은총은 바로 평화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평화는 자기 것을 내어놓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자기 욕심과 탐욕을 내려놓지 않고는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자기희생을 통해서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평화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따를 때에만 이룰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자기희생만이, 자기 비움만이, 인류의 평화, 나라의 평화, 공동체의 평화, 내 안에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한.중.일 YMCA 평화포럼에 참여하고 계신 지도자, 청년 여러분! 평화를 위하여 여러분들이, 내어놓고, 희생하고, 비워야 할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함께 평화의 세상을 기대하며, 평화가 무너진 세상에서 성 프란시스(Prayer of St. Francis)의 <평화의 기도>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심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님!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얻고, 용서함으로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아멘.”
평화가 무너진 세상에 사는 동안 성 프란시스코(Prayer of St. Francis)의 <평화의 기도>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 프란시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가슴에 새겼으면 합니다. 쉽지 않지만, 여러분들의 구체적인 삶속에서 평화를 선택하는 용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한국, 중국, 일본 YMCA 지도자, 청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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