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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성지순례, 대안, 평화여행

팔레스타인 방문기 12 <회한. 현장을 잃어버린 세대가 만든 지옥. 그만 죽이고 죽었으면 좋겠다. 2019. 4.3>

by yunheePathos 2019. 4. 4.
팔레스타인 방문기 12 <회한. 현장을 잃어버린 세대가 만든 지옥. 그만 죽이고 죽었으면 좋겠다. 2019. 4.3>

- 팔레스타인에서의 마지막 저녁.
- 계획했던 일들은 잘 마무리된 듯한데 지내는 내내 다른 때와 달리 시차를 겪는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 하루 하루가 하는 일없이 피곤함의 연속이었던 시간. 그래서 조금 더 여유롭게 시간을 구성하고 싶었던 일정.

- 어제 갑자기 Nidal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가기로 했던 나블루스와 라말라 일정을 취소했다.
- 어찌 위로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추모예배에만 참석할 생각만 하며 Nidal의 한국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위로의 메시지만을 부탁했다.
- 개인적으로 세상 제일 힘든 일이 장례식장에 가서 얼굴 보는 일이다. 가까운 사람일 수록.

- 팔레스타인에서 지인의 첫 아기의 탄생을 축하했던 7년 전의 경험과 어려운 삶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지인의 오늘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있었던 며칠 기간 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난다.

- 오늘 아침에도 나블루스 체크포인트에서 젊은 친구들이 유대인 정착민과 이스라엘 군인의 총에 맞아 어떤 의료행위도 거부된채 죽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 오늘 나블루스에 안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어쩌면 나블루스로 가는 그 시간이었지 않았을까 두렵다.
- 일주일 내내 멜과 페북으로 날라오는 소식과 현지에서 듣는 이야기는 암담하기 짝이 없는 비극들 뿐이다.

- 희망이 사라진 시간, 불가능의 순간, '이제는 더 이상 방안이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그래도'를 말해야 하는 그 심정은 무엇일까?
-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다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79년의 팔레스타인을 온전히 견디고 가꿔온 삶의 힘은 무엇일까?
- 일제 하 3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식민지 총칼을 일상으로 살았던 분들의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 무엇이 그리 바뀌었을까? 세상과 젊은 세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바뀌건 어쩌면 세상살이와 함께 나이들어 버린 우리의 얼굴과 삶의 태도가 아닐까?.
- 젊은이들은 지금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자유롭게 찾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그놈의 취업조차 더 힘들어하며 순응해야하는 더 암울한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지금이 더, 나만 아니면 다행이라는 이기심과 악마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 불행한 시간이 아닐까.
- 어쩌면 변하지 않은 거대한 흐름에 힘없이 순응한 채 나온 뱃살로 오늘의 세상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삶에 대한 질문은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 마음이 힘든 일정이다.
- 그만 죽이고 죽었으면 좋겠다.

- 마음이 허허롭다.
- field는 사라지고 권력과 제도만으로 사상과 비전의 담론을 말하며 죽어가는 이들의 소리없음에 안주하는 우리 세대들이..
- 청춘들의 지금이 어쩌면 우리의 나태함에 기인할진대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권력으로 포장하는 그들의 웃음이.
- 지금의 이 시간을 만들어 온 건 분명 민주화와 인권, 평화를 말한 그 세대일진대, 과연 물적 발전의 영광으로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 뉴스에 무슨 이유로든 아는 사람들이 나오면 괴롭다. 지금 뭐하자는 건가 싶다.

- 마음이 힘들고 허허롭다.
- 웃었으면 좋겠다.
- 맥박이 뛰는 현장이 살았으면 좋겠다.

- 추모예배를 다녀 온 후 흐리멍텅한 팔레스타인의 밤 하늘을 보며 기울이는 맥주 한잔에 담는 온갖 잡 생각이다.
 
-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상황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힘과 동시에 이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을 가져야한다고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면서도
- 어느 순간에는 나 스스로도 조절이 잘 안되는 모습을 본다.
- 이번 여정에 갖고 온 '하와이 역사와 독립운동'에 관한 한 권의 책과  '이슬람의 역사와 사상사'가 그나마 위로(?)의 여백을 만들어 주어 다행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그래도 또 다른 내일을 위해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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