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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YMCA/YMCA

"예멘의 분쟁과 난민의 삶 : 예멘포럼 청년 활동을 중심으로" ( 히샴 알바라크(Hesham Albarak), 예맨포럼 대표)

by yunheePathos 2025. 9. 27.
'국제 분쟁·갈등과 청년들의 삶'과 '평화를 일구는 청년들의 연대'라는 주제로 개최된 [청년·전문가 평화 ROUND TABLE
]에서 발표된 히샴 알바라크(Hesham Albarak, 예맨포럼 대표)의 원고. "예멘의 분쟁과 난민의 삶 : 예멘포럼 청년 활동을 중심으로"  

[청년·전문가 평화 ROUND TABLE] 는 분쟁과 갈등이 청년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사회 청년들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고양YMCA 호크마미래사회연구소, 아시아의친구들, 희망의소리, 아시아태평YMCA연맹 등이 협력하여 2025년 9월 17일(수) 14:00~18:00, 킨텍스 제2전시장 307호에서 개최되었다.

 

 

예멘의 분쟁과 난민의 삶 : 예멘포럼 청년 활동을 중심으로

 

히샴 알바라크(Hesham Albarak) 예맨포럼 대표

사례발표_히샴_예멘의 분쟁과 난민의 삶.pdf
0.07MB

 

존경하는 참석자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우리 예멘 국민의 이야기와 난민으로서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때 번영했던 예멘은 지금 내전과 전면적인 파괴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예멘은 평화롭고 안정적인 나라였지만, 2015년에 시작된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버렸습니다.

 

한국으로 이주한 예멘인들은 큰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터전을 꿈꿨지만, 현실은 거부와 난민으로서의 권리 부재였습니다. 가족 재결합과 안정적인 삶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한국은 무기를 사우디아라비아에 공급하여 예멘 전쟁에 간접적으로 참여했음에도, 역설적이게도 안전과 안정을 찾아 많은 예멘 난민들이 향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우리는 직업을 얻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차별과 불평등한 대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쟁으로 인해 예멘에서 아동 징집의 희생자가 될 뻔한 사람입니다. 저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을 거부했고, 대신 학문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제 나라 파괴에 간접적으로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난민 지위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공부와 일을 위해 한국에 왔지만,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제가 꿈꾸던 회사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유는 단지 제가 예멘 국적이라는 점과 부모님이 아직 예멘에 살아 계시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쟁과 파괴로 인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도 기본적인 권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증명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큰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사회적 갈등의 원인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 나라에서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원할 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인들과 예멘인들 사이의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힘써왔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예멘인들의 모임 대표로 활동하며, 천 명이 넘는 예멘인들에게 법률과 정보 전달, 번역 활동을 했습니다. 또한 4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4개월간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고, 우리의 요구가 고려되길 바랍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더 나은 사회 건설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일 뿐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한국 국민과 정부와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의지가 있습니다.

 

개인 증언

 

저는 예멘 출신 25살 히샴입니다. 17살 때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전쟁 속 예멘에서 청소년들에게 강제로 강요된 징집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멘에서 저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후티 반군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선생님들이 교체되었고, 그들은 저를 포함한 학생들에게 무기를 들고 반대 세력과 싸우도록 설득하려 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함께 무기를 들기를 거부했지만, 학교에서 납치되어 모카 지역의 군사 훈련소로 끌려가 고문과 강제 징집 시도를 당했습니다.

 

저는 몇몇 친구들과 탈출해 아덴으로 향했고, 아버지께 연락드린 후 한국에 있는 형과 연결되어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성년자로 강제로 떠나 난민 신청을 했고, 모든 증거를 제출했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 외국인 보호소에 머물렀고, 그 후에도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러 식당에서 일했고, 공장에서 인종차별과 착취를 당했습니다. 심지어 한 공장에서는 도망자이자 테러리스트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민국은 강제 징집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제 난민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5년 동안 재판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거부 사유는 결국 예멘 국적이라는 점과 전쟁으로 인한 강제 징집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열심히 노력하여 한국에서 예멘인 모임을 설립했고, 문화 교류, 언어 교육, 초기 문제 해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예멘인들을 지원해 왔습니다.

 

현재 저는 예멘 커피와 같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지만, 체류 신분의 제약으로 인해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체류 여건이 개선되어야 아랍 사회와 한국 사회 모두에 이로운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고, 우리의 요구가 고려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의 말씀이 한국 내 예멘 난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전달했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참석자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 앞에 서서 전쟁으로 인해 단순히 이주를 넘어, 멀고도 낯선 땅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한 예멘 세대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니라, 죽음과 가난을 피해 안전과 존엄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일상적인 고통

비록 한국은 선진국으로서 일정한 보호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예멘 청년들이 겪는 고통은 여전히 큽니다:

희망과 책임

그러나 이 모든 도전 속에서도 한국에 있는 예멘 청년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열심히 일하며, 존엄 있는 삶을 만들어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의 진정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맺음말

이 청년들의 고통은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쟁과 갈등의 대가를 치른 한 세대 전체의 고통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인도적 책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며, 한국에서 이들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https://youtu.be/Dv_6GRbryuM

 

종합보고 https://yunheepathos.tistory.com/2717

 

[청년·전문가 평화 ROUND TABLE] 국제 분쟁·갈등과 청년들의 삶

분쟁과 갈등이 청년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사회 청년들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청년·전문가 평화 ROUND TABLE]을 진행했습니다.(2025년 9월 17일(수) 14:00~18:00,

yunheepatho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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