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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YMCA/YMCA

"독일경험을 통해 본 서구 “진보” 언론의 내전과 분쟁 보도의 비판" (이승주•독일거주 한국인)

by yunheePathos 2025. 9. 27.
'국제 분쟁·갈등과 청년들의 삶'과 '평화를 일구는 청년들의 연대'라는 주제로 개최된 [청년·전문가 평화 ROUND TABLE
]에서 발표된 이승주(Lee, Seungju•독일거주 한국인)님의 원고. "독일경험을 통해 본 서구 “진보” 언론의 내전과 분쟁 보도의 비판"  

[청년·전문가 평화 ROUND TABLE] 는 분쟁과 갈등이 청년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사회 청년들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고양YMCA 호크마미래사회연구소, 아시아의친구들, 희망의소리, 아시아태평YMCA연맹 등이 협력하여 2025년 9월 17일(수) 14:00~18:00, 킨텍스 제2전시장 307호에서 개최되었다.

 

 

독일경험을 통해 본 서구 진보언론의 내전과 분쟁 보도의 비판

이 승 주(Lee, Seungju) 독일거주 한국인

 

안녕하세요. 아시아의친구들 차미경 대표님의 초청으로 국제 분쟁·갈등과 청년들의 삶에 저희 독일 경험과 부족하지만 석사졸업논문의 일부 내용을 나누게 된 이승주입니다. 발표에 앞서, 다른 나라 청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초대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주제 발제와 관련하여 1) 어떤 계기로 독일 유학을 결심했는 지, 2) 독일의 어떠한 경험 때문에 본래 유학 목표와 전혀 다른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되었는 지, 3) 석사논문의 일부인 서구 진보언론의 내전과 분쟁 보도 행태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나눌 이 모든 이야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해방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는데 하나의 작은 점이라도 될 수 있기를 하는 바람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독일 작센안할트주의 마그데부르크라 부르는 인구 약 24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에서 평화갈등학(Peace and Conflict Studies) 석사과정을 밟았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20대 초에, 보수적 성향이 짙은 모교에서 흔히 종북’, ‘좌익등으로 불리던 한 교수님의 조언으로 조정래 작가님의 아리랑태백산맥을 한 달에 걸쳐 읽게 된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경북 구미 출신의 군복무를 마친 20대 남성이라는, 극우가 되기에 최적의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었지만, ‘좌익교수님과 조정래 작가님의 소설 속 이름 없이 죽어간 분들을 만난 그 한 달이 저를 조금 다른 길로 이끈 것 같습니다.

 

독일 유학의 계기: “검은 피부, 하얀 안경

 

미국의 한 보수 논객 데이비드 호로위츠가 미국 내 평화학 과정에 대해 "이들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미국을 세계의 빈민을 압박하고 굶주리게 하는 대악마(Great Satan)로 규정하도록 가르친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미국이 아니라 독일에서 평화학 과정을 하게 되더라도, 일반적으로 평화학이라는 학문이 주류 국제관계에 팽배한 냉전 논리 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역사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의미에서 기대를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독일을 꼭 가야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독일에 대한 뿌리 깊은 사대주의였습니다. 아래 독일 입국 2개월 정도를 앞두고 제가 쓴 일기를 보시면 그 정도를 대략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불과 80여 년 전 2차 세계대전을 주도했던 독일이 어떻게 과거사 청산을 하여 지금의 평화를 이루었을까? 동서독 분단을 극복함과 동시 평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유럽연합의 평화를 주도할 수 있었을까? 홀로코스트 등 인종차별주의의 극을 보여주었지만 어떻게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받을 만큼 인류애, 박애와 인내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러나 독일에 대한 환상은 도착한 지 몇 개월도 채 가지 않았습니다. 우선 수업 내용이 위 언급한 미국 보수 논객이 평화학에 대해 내린 평가와 달리 충분히 반미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화학 과정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침략 행위를 정당화했습니다. 예컨대, 그들의 침략 행위 역사나 식민주의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언급 없이, 그들이 침략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내전(civil war)’이라는 말로 규정하는 논문을 읽도록 설계된 듯했습니다. 교수님들께서 수업을 위해 공유한 논문들은 비판적인 분석을 위해 읽는 것이 아니었고, 평화학의 여러 이론들을 배우기위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한 논조와 수업 분위기는 평화유지, 평화구축, 분쟁조정, 분쟁관리, 국가건설(State-building), 과도기정의(Transitional Justice),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여성주의, 분쟁보도, 등 평화학 전 과정과 분야에 걸쳐서 졸업할 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본국인 독일이나 서구의 침략, 인권 파괴 등의 사례에 대해서는 일관적으로 침묵하는 암묵적인 묵계는 지속되었습니다. 그러한 논문의 논조에 대한 중립적태도로 일관하는 교수님들의 수업 방식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학생들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모르는 이 불쌍한 제 3세계 국가에 우리 서구의 가치를 전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테러리스트들을 평화 대화에 동참하게 할 것인가, 왜 우리의 인도주의 개입은 실패했을까?” 와 같은 질문을 끌어냅니다. 따라서 독일 및 서구배경의 학생들이 테러리즘, 극단주의자, 해적, 실패한 국가, 불량국가를 지칭하는 나라는 늘 서구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를 전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됩니다. 서양정부의 타국에 미치는 행위는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성공하였든, ‘실패하였든, 그 의도는 선한 것이었다는 정교한 제국주의의 수사를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수업은 학생 자신들의 국가인 독일과 서구는 전쟁과 인권 파괴에 어떠한 책임이 있는가?”, “애초 테러리즘의 정의가 무엇인가? “우리 정부가 테러리스트인가등과 같은 자기 성찰적 질문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논조들에 대한 비판에 교수님들의 답은 이 논문이 본 이론에서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것이다였습니다.

 

서구 진보언론사 분석의 계기: 21세기 동양학으로서 평화학

 

적어도 제가 경험한 평화학 과정 수업의 내용, 방식과 구조는 과거 유럽제국주의 침략에 이론적 토대를 사전과 이후에 마련하였던 동양학(Oriental Studies)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다르게 되었습니다. 이론적인 용어로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말한 문화적 헤게모니, 혹은 담론으로서 오리엔탈리즘이 동의와 합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이드의 말을 빌려 오리엔탈리즘을 짧게 말씀드리자면,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동양을 향한 인종주의적 관념, 혹은 동양의 후진성에 대한 유럽의 우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여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유럽식 동양 관념의 문화적 헤게모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쉽게 풀어내자면, 과거 유럽제국주의자들은 물론 계몽주의자로 불렸던 이들이 서양이 기본적으로 나머지 세계보다 우월하다는 전제로 동양을 재단하고 평가하려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 유학을 위해서 계획했던 초기의 독일 통일을 한국과 비교하여 독일을 통해배우려는연구는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특히 평화학 과정에서 드러나는 서구학계의 동양에 대한 인종주의적 인식뿐만 아니라, 나미비아의 헤레로와 나마민족 학살 역사 등 독일사회의 식민지 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한 태도, 팔레스타인 다큐 상영을 하려는 계획에 대한 교수님들의 병적인 반응들을 보며 제가 독일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이미지들은 철저히 백인의 눈으로 본 것일 것이다 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야말로 프란츠 파농의 말을 빌리자면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혹은 검은 피부, 하얀 안경을 쓰고 독일을 봐온 것이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평화학 과정 내내 소심한 학술적 복수를 했던 것 같습니다.“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수업 구조의 문제와 대안”, “중재이론, 서양학자, 그리고 나”, “제국주의 아래에서 과도기정의”, “사드: 미국의 거절 불가능한 선물로 인한 눈물등을 제목으로 한 보고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하나의 특정 사례로는 서구 학계를 제대로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서구의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 좌파라 불리는 이들이 써내는 인권 담론 자체를 분석하기로 하였습니다. , 이들이 인권 담론에서 소개하고, 재단하고, 평가하는 거의 모든 동양의 사례들이 실은 얼마나 일관적으로 제국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지를 좀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국주의의 수단과 진보라는 가면: 뉴욕타임즈 인권 담론의 오리엔탈리즘

 

제 석사 논문의 주제는 뉴욕타임즈 인권 담론의 오리엔탈리즘입니다. 사실 노엄 촘스키, 애드워드 허먼, 크리스 헤지 등, 무수한 학자들에 의해 이러한 서구 언론의 보도 행태에 관한 비판적 연구는 많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또 현장에서 특별한 의미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쓴 것은 아닙니다. 서양 학계의 오리엔탈리즘 혹은 유럽중심주의의 문제를 직면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돌아보며 이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비서구 사회에 대해 얼마나 편견 없이 보고 있을까, 또 다른 비서구 사회는 우리 사회를 편견 없이 보고 있을까? 어떻게 비서구 사회 사이에 서구의 눈을 통하지 않고 직접 소통할 수 있을까? 나머지 세계, 지구적 남반구, 비서구로 불리는 우리가 실제로 모인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

 

이러한 고민 끝에 독일의 국제안보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제가 졸업한 석사과정 언론학 수업에서 한 교수님의 말을 빌리면 좋은 언론”, 2014년 포스브 기사에 따르면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세계관”, “윤리적 보도 기준과 미국 저널리즘의 고전적 요소를 가진 뉴욕타임즈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언론을 분석한 이유는 서구 사회에서 진보라고 부루는 이들의 제국주의적 가면을 좀 더 철저히 보아야겠다는 목적과 이를 통해 서구의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도 다시 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분량의 한계로 제가 쓴 논문의 결론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탈식민주의 담론 분석 (Decolonial Critical Discourse Analysis)라 부르는 분석 방법을 통해 뉴욕타임즈가 "인권"을 언급한 기사를 분석했습니다. 1948년 인권선언문이 채택된 해, 1978년 인권 대통령이라 불린 지미 카터 재임기간 미국 대외 정책의 중심에 인권이 기준이 된 해, 201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을 선정했습니다. 세 시기를 선정한 기준은 그나마도 가장 인류보편의 가치, 표현의 자유, 인권의 수준이 좀 더 보장될 것으로 기대되는 시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보도 경향 혹은 언론인들의 보도 행태가 이제는 더 이상 단순히 눈에 드러나는 직접적인 강압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서구 사회에서 받은 교육과 미국 언론 시장이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동의와 합의를 통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다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세 시기에 서구 주류 언론사 중에서 가장 신뢰 받는 언론에 얼마나 오리엔탈리즘 혹은 유럽중심주의가 팽배한 지, 이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재생산하는, 쉽게 말하여 고도화된 인종차별주의를 재생산하는 보도 방식이 어떻게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 정책을 정당화하거나, 그것이 꼭 도덕적으로 부당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만드는 지, 그 경향을 분석하였습니다. 인권을 언급한 보도의 중심에 서양은 평가자나 재판관의 위치로, 그 나머지 국가는 평가 받는 학생이나 재판 받는 이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미국이나 서양이 당연하게 평가자의 위치에서 동양을 재단하는 태도를 지적한 기사는 물론 없었으며, 미국 대외 정책 관계자들의 말을 쉽게 인용했습니다. 역사적 맥락도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양이 인권 탄압 문제의 중심 주제로 나타날 때, 탄압의 중심에 있던 그 동양의 지도자는 미국이 주도한 서양 군사/정치 개입으로 세운 대통령 혹은 독재자였다는 점 입니다. 물론 뉴욕타임즈는 그러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식민주의 문제, 잔재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인권을 언급한 기사에 식민주의 문제가 중심이 된 기사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기별 분석 사례 몇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481210일은 세계보편인권선언문이 채택된 해이지만, 한국과 팔레스타인에게는 비극의 해였음을 뉴욕타임즈는 철저히 무지와 침묵으로 침략의 정당화에 동조하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낙바로 알려진 1948515일 하루 전날 전 세계 최초로 이스라엘의 건국을 승인하고 제주43학살에 책임이 있는 트로먼을 교회의 말을 빌려 찬양하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1978년대의 기사에서 미국이 니카라과, 필리핀 인권을 걱정하는 듯한 기사를 쓰면서도 어떻게 니카라과와 필리핀의 해방운동이 바로 그 카터 정부, 과거에는 루즈벨트 정부에 의해 탄압을 받았는 지에 대한 내용을 쓰지 않았습니다. 2009년의 경우, 이란 학생과 콩고의 민간인 학살 역사를 거론하지만, 마찬가지 미국과 벨기에의 콩고의 초대 총리였던 패트리스 루뭄바 살해 음모, 이란 모사데드 정부의 미국의 개입 등의 역사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기사의 논조는 미국의 인권에 대한 염려’, 인권 개선에 대한 군사개입을 통한노력등이 강조될 뿐이었습니다.

 

우리를 아직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아프리카 배경 단체에서 일하던 때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저는 베를린에 기반을 둔 카메룬 출신 탈식민주의 비영리단체 '아프리카의미래'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단체 대표에게 한국 사회에서 흔히 일본 정부를 향해 "독일처럼 과거사 청산 역사를 배워라"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를 아직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과 같이 독일의 식민지 침략의 피해를 받았던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보았다면, 그들의 저항과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눈물과 이야기를 먼저 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과 함께 서양 학계와 언론을 비판하는 글을 읽고 쓰면서, 저는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와, 적어도 저 자신은 타국 배경의 사람들을 진정한 한 인간으로 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서구 언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의 뚜렷한 보도 특징 중 하나는 서구 이외 지역에서 벌어지는 해방 운동과 독립운동가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적어도 우리사회는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한 '하얀 안경'을 벗어던지고, 반식민지 투쟁 과정에서 각국에서 외친 저항의 목소리가 더 많이 공유되어 서로를 진정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8nKidcn-es4

 

종합보고 https://yunheepathos.tistory.com/2717

 

[청년·전문가 평화 ROUND TABLE] 국제 분쟁·갈등과 청년들의 삶

분쟁과 갈등이 청년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사회 청년들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청년·전문가 평화 ROUND TABLE]을 진행했습니다.(2025년 9월 17일(수) 14: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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