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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내다. 책 몇권 남기고 싹 정리. 청주Y에서 자료실를 만들어 보관하기로하고 오늘 가져갔다.(1000권 정도, 쓸모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와이 관련 자료들이 유실되지 않고 보관되었으면 좋겠다. 웬지 아쉽다~~~. 보관하려고 따로 챙겨놨던 책들과 자료들도 다 내놨다. 책 정리하고 닭백숙으로 점심 나눔. 이창호 총장님, 강한별 간사님 감사~~ 오늘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 구입. 아주 가볍고 폰 크기 정도. 노트북 들고 다니는 것도 이제 귀찮은 듯 무겁기만하다는 핑계로 저질러 봤다. onenote로 문서들을 공유하고 어디서든 메모는 간단히 가능할 듯하다. 얼마나 이용할지.. 오랜만에 onenote 계정을 살려보니 3, 4년 전 메모들이 나와 정리도 하는 보너스. 2018. 12. 5.
YMCA 인물 52. 무사정신을 강조한 조병옥 박사 무사정신을 강조한조병옥 박사 -연희전문교수, 항일민족운동의 전위대 조병옥 박사는 동학난이 일어났던 1894년 3월 21일 충남 천안군 용두리(龍頭里) 목천(木川)에서 태어났다. 목천이란 곳은 최근 독립기념관의 건립터로 선정된 곳이며 이동녕(李東寧), 이범석(李範奭), 류관순(柳寬順) 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태어난 고장이며, 류관순 영화에 나오는 “조(趙) 속장”은 바로 조 박사의 아버님이 된다. 그만큼 이 고장 사람은 예부터 독립정신과 정의감의 강한 사람들이었다.1908년 15세 때 5년제 공주(公州) 영명(永明)소학교 4학년에 편입, 17세 때 다시 4년제 평양 숭실중학 3학년에 편입, 1912년 이 학교를 졸업하고, 현 연세대학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년 간 고등교육을 받고 잠시 그 학교의.. 2018. 12. 4.
YMCA 인물 51. 영원한 한국인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박사 영원한 한국인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박사-세브란스 교수, 독립과 인권의 수호자 「내가 죽거들랑 한국 땅에 묻어주시오. 그리고 내가 평소에 도와주던 소년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계속 도와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죽은 고(故)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박사는 1919년 3.1운동 때 한국민족을 위해 싸우다가 일경에게 강제 추방을 당한 우리 민족의 은인이다.그는 1889년 3월 15일, 영국 워리크주(Warwickshire) 럭비(Rugby)시에서 출생, 고향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뒤 19세 때(1907) 캐나다로 이민 가서 토론토대학 수의학과에 입학, 고학으로 1910년 동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졸업한 뒤 모교에서 세균학 강의를 하다가 19.. 2018. 12. 4.
YMCA 인물 50. 한국교회 토착화를 주장한 변성옥 박사 -목사, 정치가, 신학교 교수, YMCA 총무 한국교회 토착화를 주장한 변성옥 박사-목사, 정치가, 신학교 교수, YMCA 총무 감리교회 목사․신학교 교수․정치가․YMCA 총무이던 변성옥 박사는 1892년 평양 태생, 1913년에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나왔으며, 도미하여 1926년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 신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곧 감리교 협성신학교 교수가 되었고, 이어 미감리회 조선연회의 종교교육부 간사로 시무했다. 1930년 12월에 남북 감리교회가 합동될 때에는 유형기(柳炯基), 김성실(金誠實) 등과 함께 합동총회의 간부로 활약했으며, 그 뒤 조선감리회 선교연회의 만주 선교사로 임명되어 만주로 갔다.만주에 가서 선교를 하던 중 그는 1935년 1월 조선감리회 북만(北滿)지방회장 현성원(玄聖元)과 그 밖의 한동규(韓東圭), 우.. 2018. 12. 4.
YMCA 인물 49. 일본인에게도 존경받은 이상재 선생 2 일본인에게도 존경받은이상재 선생 -하나의 족자가 이해의 가교가 되다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은 동경 대진재가 일어났을 때 한국에 계셨으므로 그 난리를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그 소식을 서울에 앉아서 들었을 뿐이며 마음 속으로 아파했을 따름이다.그러나 선생은 동경 대진재와 깊은 인연을 갖고 있으니, 그것은 선생이 직접 쓰신 「一心相昭不言中」이란 족자와 얽힌 이야기이다.알다시피 1923년 동경 대진재가 일어나자 일본인 폭도들은 수많은 한국인 유학생들과 노무자들을 마구 잡아 죽였다. 이것을 보고 한 양심적인 일본인 의사 가와가미 쇼도무(小上昌得)이란 사람이 부상을 입고 거의 죽게된 한국인들을 자기 병원으로 옮겨다가 응급치료를 해주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무료로 입원시켜 치료해 준 것이다.그런.. 2018. 12. 4.
YMCA 인물 48. 3.1독립운동 민족대표 양전백(梁甸伯) 목사 3.1독립운동 민족대표양전백(梁甸伯) 목사 -학생Y 운동의 개척자로 지도력 발휘 한국장로교 최초의 7인 목사로 손꼽히는 분이며 3.1독립운동의 33인 민족 대표이신 고(故) 양전백(梁甸伯) 목사. 1869년에 평안북도 구성(龜城)에서 태어난 그는 타고난 학자의 기질과 재능으로 한학을 수학한 후 곧바로 마을 서당의 훈장이 되었다.때마침 만주에서 예수를 믿고 돌아온 백홍준(白鴻俊), 이응찬(李應贊), 서상륜(徐相崙) 등 초대교인들은 의주를 중심으로 철산, 구성, 선천의 각 군인(君人)들에게 만주로부터 들여온 기독교 서적을 배포하게 되었다. 이때 소년 양전백은 처음으로 기독교 서적을 보게 되었고, 구성 사람 김이련(金利鍊)과 김관근(金灌根) 부자(父子)의 전도로 26세가 되던 해에 기독교인이 되었다.때마침 청.. 2018. 12. 4.
YMCA 인물 47. Y 농촌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개척자 백사당(白沙堂) 양주삼(梁柱三) 박사 Y 농촌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개척자백사당(白沙堂) 양주삼(梁柱三) 박사 -Y운동 조직화와 한국NCC 창설에 공헌 아호가 백사당(白沙堂)인 양주삼(梁柱三) 박사는 1879년 1월 25일에 평안도 용강(龍岡)에서 출생했다. 4남매 가운데 맏아들인 그는 6세 때부터 한문공부를 시작했다. 유불선삼도(儒彿仙三道)로부터 시작해서 동학에 흥미를 갖기도 했으나, 우연한 기회에 만국공보(萬國公報)와 덕혜입문(德慧入門) 등의 한문으로 된 기독교 서적을 읽게 되면서 기독교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20세가 되던 1899년에 그는 서울로 올라와 선교사들과 만나면서부터는 유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 헐버트(H. B. Hulbert) 선교사의 소개장을 얻은 그는 25원을 꾸려서 1901년에 상해로 가는 선박에 오르게 되어 남감리.. 2018. 12. 4.
YMCA 인물 46. 참다운 평신도상을 심어준 해사(海沙) 김명선(金鳴善) 박사 참다운 평신도상을 심어준 해사(海沙) 김명선(金鳴善) 박사 -인술을 통해 영혼을 구혼하는데 힘써 해사(海沙) 김명선(金鳴善) 박사는 1897년 10월 17일, 지금은 이북 땅이 되어버린 황해도 장연군(長淵君) 대구면(大救面) 송천리(松川里)에서 태어났다. 송천리는 보통 ‘소래’라고도 하고 ‘솔내’ 또는 ‘솔샘’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소나무가 울창한 계곡에 맑은 샘물이 콸콸 솟아 문전 옥답에 물을 넉넉히 대어주면서 황해바다로 잇고 있으며 소나무 숲과 바닷가의 모래밭, 그리고 그 위에 만발한 해당화의 절경은 유명하다. 그보다도 소래 마을은 한국 개신교의 요람지이기도 하다. 대개는 1885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목사가 한국에 입국함으로써 처음 복음이 전파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미 소래마을에는 복음의 씨가 .. 2018. 12. 4.
YMCA 인물 45. 한국선교의 기반을 닦은 서울YMCA 3대 회장 터너 주교 한국선교의 기반을 닦은 본회 3대 회장터너 주교 한국성공회 제 2대 주교와 황성기독교청년회 (즉 서울YMCA)의 제 3 대 회장을 지낸바 있는 A.B.터너(Arthur Beresford Tur-ner) 주교는 1862년 8월 24일 영국에서 출생, 한국에는 1896년 12월 2일에 입국했다. 한국에 와서는 단 아덕(端雅德)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그는 옥스퍼드 케블(Keble)대학과 커데스돈(Cuddesdon)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887년에 옥스퍼드에서 부제(副祭:Deacon), 1988년에 사제(司祭:Priest), 1905년 1월 25일 제 2대 한국성공회 주교로 서품(叙品)을 받고, 1910년 10월 8일데 한국에서 순직하여 양화진 외인묘지에 묻힐 때까지 한국 선교의 기반을 닦아 놓은 위대한 .. 2018. 12. 4.
YMCA 인물 44. 재일본 한국Y 4대총무 이기윤(李基潤) 선생 재일본 한국Y 4대총무이기윤(李基潤) 선생 -YMCA활동과 함께 성북고교 설립 등 교육사업에 헌신 재일본 한국YMCA의 제 4대 총무를 지낸 바 있는 이기윤(李基潤) 선생의 약력을 찾아내기 위해 무척 고심을 하던 차에 문득 김희선(金熙善) 선생을 우연히 어느 모임에서 만나, 그의 도움으로 이 글을 쓰게 됐다.이기윤 선생은 1879년 함경남도 단천(端川)군 단천읍 태생이다. 단천은 인물이 많이 배출되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예를 들면 한국 현대사에 혜성과 같이 나타났던 이동휘(李東輝) 선생, 북한의 괴뢰 김일성이 아닌 진짜 김일성(金一成) 씨, 건국대학의 창설자인 고 유석창(劉錫昶) 선생, 세종대학의 창설자이며 이사장인 주영하(朱永夏) 박사, 일본 동경교회의 목사이며 전 재일본 한국Y의 이사장이던 오윤태(吳.. 2018.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