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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 인물 33. 덴마크식 농촌운동의 개혁자 청만(晴巒) 이기태(李基台) 선생 덴마크식 농촌운동의 개혁자청만(晴巒) 이기태(李基台) 선생 청만(晴巒) 이기태(李基台) 선생은 1894년 6월 7일에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을 닮아 전형적인 한국의 선비 그대로의 천성과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학문과 글쓰기를 즐겼다. 담담하고 조용한 그의 일상생활은 극히 평범했으나 도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으며, 두드러지게 사회에 나타나는 일이 없었어도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YMCA와의 관계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활발히 촉진되었던 덴마크식 농촌운동에 가담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청만 선생은 빈틈없는 문필가로서 YMCA 기관지인 청년(靑年)에다가 ‘농촌으로 가자’라는 제목의 글을 썼으며, ‘정밀의 농업’이라는 논문을 9회나 연재하기도 했다.청만 선생은 정열과 지식을 겸.. 2018. 12. 4.
YMCA 인물 32. 한국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찌(會田嘉伊智) 옹 한국 고아의 아버지소다 가이찌(會田嘉伊智) 옹 소다 가이찌(會田嘉伊智) 옹은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고아들을 위한 사업에 헌신한 사회사업가이며 교육자이다. 1867년 10월 20일에 일본 야마구찌겐(山口縣)에서 태어난 그는 20세가 되던 해부터 고향을 떠나 방랑생할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양문명의 창구 구실을 했던 나가사끼(長琦)항의 탄광에서 광부일을 하면서 고학하던 것을 비롯해서 25세부터는 노르웨이 화물선 선원이 되어 홍콩에서 수년간 식민지로서의 생활을 겪었다. 그리고 29세에는 대만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당시의 대만도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이다. 그곳에서 독일인이 경영하는 제조공장에서 통역을 하다가 32세 되던 해에 중국본토에 가서 일본군대의 군속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 2018. 12. 4.
YMCA 인물 31. 재일본 한국Y 2대 총무 해온(解溫) 백남훈(白南薰) 재일본 한국Y 2대 총무해온(解溫) 백남훈(白南薰) 백남훈(白南薰) 선생의 아호는 해온(解溫), 1885년 11월 3일 황해도 은율군 장연면 서부리 176번지에서 탄생, 83세의 고령으로 1967년 6월 28일에 이 세상을 떠나신 분이다. 교육가, 정치가, 사회운동가로서도 찬란한 경력을 가진바 있는 그가 YMCA와 관계를 갖게 된 것은 1909년에 선생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부터였다. 선생은 25세 되던 해에 도쿄의 명치학원(明治學院)에 입학하여 1913년에 졸업하고, 다시 와세다(早稻田) 대학 예과를 거쳐 1917년에 동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도쿄에 가자 곧 재일본 한국YMCA(원명은 재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의 총무 김정식(金貞植) 선생의 안내로 그 회원이 되는 동시에 때마침 일본 유학생 전.. 2018. 12. 4.
YMCA 인물 30. 육정수(陸定修 또는 陸定洙) 선생 육정수(陸定修 또는 陸定洙) 선생 육정수(陸定修 또는 陸定洙) 선생의 아호는 삼전(三田), 본관은 옥천(沃川)이다. 1885년 2월 25일, 충청북도 옥천(沃川)에서 명문거족인 육(陸)씨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그(故 陸英修 여사의 사촌오빠)는 12세 때인 1896년에 서울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마침 독립협회가 창설되었으므로 학당 안에서 서재필(徐載弼), 윤치호(尹致昊) 등으로부터 신문학과 의회헌법, 만국공법(萬國公法, 즉 국제법), 영어 등을 배웠다. 그 당시의 동창생으로서는 이승만, 신흥우, 여운형, 정교, 양홍묵, 오긍선 등 명사들이 많았는데, 이들로 학교 안에 협성회(協成會)가 조직되었을 때에 그는 창설회원의 한사람으로도 활약했다.YMCA운동에 그가 처음으로 가담한 것은 1901년 배재 대학부 학.. 2018. 12. 4.
YMCA 인물 29. 계병호 선생 계병호 선생 계병호 선생은 1896년 10월 14일 평북 선천면(宣川面) 당골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기독교 신자가 되어 당시 평북 지방의 유명한 기독교학교이던 선천 신성학교(信聖學校) 졸업생의 영광을 입게 되었다.신성학교는 1906년 장로회 선교회 사업으로 창설된 학교로서 1912년 105인 사건 때에는 가장 문제가 되었던 학교이다. 다시 말해서 105인 사건은 제1대 조선총독 데라우찌(李內正毅)란 자가 한국기독교 세력을 뿌리뽑기 위하여 수 백 명의 기독교인들을 검거했다가 그중 105명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던 사건이다. 1910년 11월 5일 압록강 철교의 가설공사를 마치고 그 준공식에 참석하러 가는 데라우찌 총독을 민족주의자들과 학생들이 만주 안동(安東)에 사람을 보내 권총을 사다가, 선천 신.. 2018. 12. 4.
YMCA 인물 28.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산업교육을 담당한 YMCA 초창기 공업부 간사 그레그(George A. Gregg, 具禮九)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산업교육을 담당한 YMCA 초창기 공업부 간사그레그(George A. Gregg, 具禮九) 그는 캐나다 사람으로서 1906년 가을에 한국에 와서 황성기독교청년회 공업 간사가 되어 1928년까지 봉직했다. 한평생 독신생활로 일관하면서 온 정력을 YMCA에 바친 그는 성품이 아주 충직하고 부지런하며 믿음이 아주 신실한 분으로서 한평생 평신도로 교회에 헌신하였다. 처음에 그는 미국에 가서, 뉴욕에 있는 어느 철도회사의 기술자가 되었다. 거기서 몇 해 동안 일하는 동안에 인정을 받아 하트포드 공업학교(Industrial Institution in Hartford)의 교장이 되었다가 다시 YMCA 국제위원회의 요청으로 산업교육부 전문 간사가 되었다.한국에 오게 된 동기는 그가 YMCA 국제위.. 2018. 12. 4.
YMCA 인물 27. 한서(翰西) 남궁 억(南宮 億) 선생 한서(翰西) 남궁 억(南宮 億) 선생 그는 언론인․시인․애국투사․YMCA이사를 역임하였고 아호는 한서(翰西)이다. 1863년 12월 27일 서울 태생으로서 일제가 보기 싫어 강원도 홍천국 보리울이라는 곳에서 숨어살다가 1939년 4월 5일에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업적을 몇 가지만 든다면, 첫째, 1896년 독립협회 창설에 가담한 것과 1898년부터 황성신문(皇城新聞)을 창간한 것을 들 수 있다. 국가의 문화발전과 사회계몽을 위해서는 일간신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황성신문의 사장 겸 주필이 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옥고도 치루고 정간도 여러 차례 당했지만 이 신문의 공헌은 우리나라 근대화에 있어서 빛나는 것이었다.둘째는 선생의 공헌을 그의 교육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생은 1.. 2018. 12. 4.
YMCA 인물 26. 일생을 소년들과 함께 살아온 정성채(鄭聖采) 선생 일생을 소년들과 함께 살아온 정성채(鄭聖采) 선생 정성채(鄭聖采) 선생은 1899년 9월 1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수업하던 중 불려나와 1921년부터 YMCA 소년부 간사가 됨으로부터 1950년 6.25전란으로 납북되기까지 거의 일생동안 Y안에서, 또한 Y주변에서 살아온 Y맨이며, 더욱이 정성채 선생은 소년들과 함께 살아온 지도자이다.그는 YMCA 소년부 간사로 있던 당시에 중앙학교 교사인 조철호(趙喆鎬)씨와 함께 주동이 되어 1922년 10월 5일에 소년군 또는 소년척후군이라는 운동단체를 창설했다. 이 소년군은 1908년 영국의 베이든 포웰(R. Baden Powell)장군이 창설한 보이스카웃이란 단체로서, 15~18세 소년들을 중심으로 단체생활을 통해 .. 2018. 12. 4.
YMCA 인물 25. 청소년들에게 애국․민족정신을 고취시킨 근원(槿園) 강 매(姜 邁) 선생 청소년들에게 애국․민족정신을 고취시킨근원(槿園) 강 매(姜 邁) 선생 근원(槿園) 강 매(姜 邁) 선생은 황성기독교청년회 초창기 회원으로서 1914년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제 1회 전국대회에 참석하여 전국연합회를 창설한 것을 비롯해 학생YMCA의 지도자, 동하령회의 강사, YMCA 이사 등을 역임한 바 있는 열성적인 Y맨이다. 이제 간단히 그의 약력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근원 강매 선생은 1878년 9월 27일 충남 천안군 풍세면(豊歲面) 풍서리(豊西里)의 깨끗한 선비가문에서 태어났다. 나이 25세까지는 고향에서 한문과 유학을 공부한 후 1904년 서울에 올라와서 양잠학교에 입학했다. 이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양반가문의 선비 자식으로서, 단순히 누에 기르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에 들어.. 2018. 12. 4.
YMCA 인물 24. 청년의 정신교육에 힘쓴 3.1독립운동 민족대표 이필주(李弼柱) 목사 청년의 정신교육에 힘쓴 3.1독립운동 민족대표이필주(李弼柱) 목사 이필주(李弼柱) 목사는 3.1 독립운동의 33인의 민족대표 중의 한사람으로서 당시 감리교 정동교회의 목사로 시무했으나 그 이전에는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체육교사였다. 그보다 먼저 이필주 목사는 구한말의 직업군인이었는데 타고난 성격이 매우 강직하고 용감하여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성미였으며 동학난 때에는 크게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제 간단히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그는 1869년 11월 9일 서울 중구 남창동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몹시 구차하여 아버지가 하고 있는 실뽑는 일을 하며 가사를 도왔는데 18세 되던 해에 아버지는 쥐병(티부스)에 걸려 병사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도 그 쥐병에 전염이 되어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으므로 아.. 2018.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