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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 인물 14. 게일 박사(J. S. Gale, 憩一) 게일 박사(J. S. Gale, 憩一) 초대 선교사들 중 게일(憩一, J. S. Gale) 박사는 독특한 배경과 동기로 한국에 온 선교사였다. 그는 캐나다 토론토(Tronto)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그 대학의 학생YMCA의 파송을 받아 선교사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그는 목사도 아니었고, 신학공부도 못했던 26세의 총각이었다. 학생YMCA의 파송인만큼 어떤 기성교의 재정후원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다만 학생들의 호주머니가 그의 유일한 밥줄이었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용감한 선교사였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한국YMCA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는 12명 창설이사중의 한 사람이며, 1903년 10월 28일 창립총회 때는 헌장 기초위원을 대표하여 헌장초안을 설명했다. 1905년부터 황성기독교청년.. 2018. 12. 3.
YMCA 인물 13. 여병현 선생 여병현 선생 여병현 선생은 1867년에 태어났으나 그 생일과 세상 떠난 날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가 직접 말한 것과, 다른 몇 가지 문헌을 근거해서 그는 황해도 사람이며 19세기 말의 유명한 여행가이며 개화꾼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또한 그는 한국YMCA 창설에 있어서 최초의 공로자요 최초의 이사였다는 점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다시 말해서 1903년 10월 28일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창설될 때 그는 창립회원인 동시에 최초의 이사 12명 중의 한사람이었다. (12명 이사 중 2명만이 한국인이었다) 그는 일찍이 미국과 영국에 유학하고, 귀국하여 배재대학(한때 이렇게 불렀음)의 선생을 거쳐 영국공사관, 세브란스 병원 등에서 일하다가 신병으로 일찌기(1920년대) 세상을 떠났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 2018. 12. 3.
YMCA 인물 12.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목사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목사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목사는 한국YMCA가 창설되기 이전에 공헌한 인물이다. 그는 창설준비의 만반을 위해 힘쓰다가 창설을 못 본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펜젤러 목사는 감리교의 초대목사이다. 그는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와 함께 1885년 4월 5일 한국에 상륙했다. 그는 1858년 2월 6일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8세 때 중생을 체험하고 프랭클린 마샬대학(Franklin Marshal College)을 거쳐 드루 신학교(Drew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했다. 그는 이미 재학 당시 1883년 겨울 신학교 연합집회 때 외국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한국을 향해 떠.. 2018. 12. 3.
YMCA 인물 11. 초창기 신교육의 개척자 우사 김규식 박사 초창기 신교육의 개척자우사 김규식 박사 우사 김규식 박사는 1881년 1월 27일 경남 동래 태생으로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새문안교회 목사 언더우드(H. G. Underwood) 박사의 구호를 받아 그의 양자가 됐다. 이처럼 양자가 된 덕택으로 그는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고 미국유학을 갈 수 있었다. 즉 그는 1896년 16세 때 미국 버지니아주 로녹(Roanoke)대학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공부하고 1904년에 귀국했다.귀국한 그 해부터 그는 YMCA, 즉 그 당시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초대간사 겸 청년회 학관 교사가 됐다. 1913년 해외로 망명을 갈 때까지 그는 Y학관의 교사 또는 학감으로서, 또 한편 새문안교회의 초대장로로서 교계에서 크게 활약했다.이 기간중의 역사가 우리.. 2018. 12. 3.
YMCA 인물 10. 한국농촌운동의 개척자 홍병선(洪秉璇) 목사 한국농촌운동의 개척자홍병선(洪秉璇) 목사 홍병선(洪秉璇) 목사는 1888년 11월 7일 서울에서 태어나셨다. 천성이 본래 활달하고 총명하여 서당에 다닐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었다. 1902년 15세 때 사립 경성학당(京城學堂)이란 신교육기간에 입학하여 신문학을 배우고, 일본조합교회(日本組合敎會)의 추천을 받아 21세(1908년) 때에 교토(京都)에 있는 동지사신학교(同志社神學校)에 입학하여 3년 간 외국유학을 했다. 귀국하여 1911년부터 한양기독교회(漢陽基督敎會)의 전도사가 되는 한편 보성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홍병선씨가 남감리교회(南監理敎會) 전도사가 된 것은 그가 29세 되는 해인 1916년의 일이다. 그 뒤 1923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1967년 7월 19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7가.. 2018. 12. 3.
YMCA 인물 9. 지방Y의 개척자 이순기(李舜基) 선생 지방Y의 개척자이순기(李舜基) 선생 이순기 선생은 1890년 9월 2일 함경남도 함주군 상조양면(上朝陽面) 상한리(上閒里)에서 태어나셨다. 그 당시 관례에 따라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예절을 배웠다. 그 뒤 새로 창설된 함흥 영생학교에 입학하여 신교육을 받는 동안 그는 감동하여 예수를 믿게 됐다. 졸업한 뒤 1911년부터는 함흥 영생애학교의 선생이 되고 1914년부터는 원산에 가서 루씨 여학교의 교편을 잡았다.그러나 그는 1918년부터 새로운 운동을 개척했다. 즉 YMCA는 서울에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현 서울YMCA) 하나밖에 없었던 것을 함흥기독교청년회를 창설함으로써 지방YMCA의 개척자가 되었다. 이것이 곧 최초의 지방 YMCA이다.그런데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영생학교 안에 학생 YMCA가 .. 2018. 12. 3.
YMCA 인물 8. 민중계몽운동에 앞장선 해관 김일선(金一善) 민중계몽운동에 앞장선 해관 김일선(金一善) 해관 김일선 선생은 1872년 5월 16일(음력) 서울 누상동(樓上洞, 유각골)에서 아버지 김재희(金在熙)씨와 어머니 장(張)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고 신학문은 별로 배우지 못했다. 기독교에 입교하기는 1902년부터였다. 그는 1911년에 이르러 유명한 백정 해방운동의 지도자 박성춘씨와 함께 승동장로교회의 초대 장로로 피선되어 1935년 1월 24일 이승을 떠날 때까지 그 교회의 주인 장로로 있었다. 그리고 1906년에 그 교회가 사립승동기독학교(국민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그는 초창기부터 그 학교의 교사 또는 교장직을 맡아 일했으며, 1920년부터는 경성보육원(京城保育院, 한국 최초의 고아원이며 吳競眞 박사의 기독보육원의 전신).. 2018. 12. 3.
YMCA 인물 7. 학생YMCA운동의 선봉인 삼성(三醒) 김정식(金貞植) 학생YMCA운동의 선봉인삼성(三醒) 김정식(金貞植) 삼성(三醒) 김정식(金貞植) 선생은 1862년 8월 6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상경하여 정계에 투신했다. 1896년부터 1898년까지 독립협회가 한창 기세를 올릴 무렵에 김정식씨는 주요관직에 있었다. 즉 오늘날 내무부 치안국장에 해당하는 경무관 자리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독립협회운동에 깊은 공감을 느끼면서 가끔 그 집회에 참석했던 것이다. 또한 적극적으로 독립협회 회원들의 신변을 보호해주었다. 그러다가 그는 정부의 미움을 사서 1902년 다른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게되었다. 이처럼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에 그는 기독교신자가 되었고, 1904년 석방된 뒤에는 연동장로교회에 입교하였고, 동시에 다른 동지들과 함께 황성기독교청년.. 2018. 12. 3.
YMCA 인물 6. Y를 국제적 회합의 중심이 되게 한 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 Y를 국제적 회합의 중심이 되게 한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 「우리 조선사람이 5백년동안 받아온 교육사상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합되는 실용물이 되지를 못하였읍니다. 다시 말하면 전부가 허위를 숭상한 그 사상이 우리의 교육, 정치, 경제, 일상생활의 빛이매 그리로서 우러나오는 모든 점이 무엇무엇 할 것 업시 실질을 떠낫슴으로 모두가 불완전이요 허구라고 할 수 밧게 업슴니다」. 1929년 금강산 온정리에서 열린 청년회들의 하령회 석상에서 행한 좌옹 윤치호의 연설은 우리 민족의 일대 변혁기에 내린 좌옹의 시대 진단이었다.1865년 12월 26일 아산 신촌에서 한말 형조 판서와 군부대신을 역임한 윤웅열 장군의 장남으로 태어난 좌옹은 갑신정변과 임오군란,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의 우리 근세사의 가장 긴박한 현장.. 2018. 12. 3.
YMCA 인물 5. 질렛트(Philip L. Gillett) 초대총무 질렛트(Philip L. Gillett) 초대총무 황성기독교청년회는 1903년 10월 28일 창설되었다. 이보다 앞서 1899년에 언더우드, 아펜젤라 등 장감 양교파 선교사들과 150명의 한국청년들이 YMCA 국제위원회에 설립 청원서를 냈고, 1900년에는 라이언(D. W. Lyon)이란 사람이 와서 기초조사를 했고, 1901년에는 YMCA 국제위원회가 전문가를 한국에 파송하게 되었다. 이 때 파송되어 온 사람이 질렛트(Philip L. Gillett, 吉禮泰)였다. 그는 1874년 미국 일리올스(Illiols)에서 나서 콜로라도(Colorado) 대학을 졸업한 뒤 예일(Yale) 대학에서 1년 6개월 간 공부하고 그 대학 YMCA의 전도사업의 담당간사가 되었다. 때마침 YMCA 국제위원회가 한국YMCA.. 2018.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