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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YMCA/YMCA458

YMCA 인물 35. 3.1운동을 초교파적인 연합운동으로 이끌어간 33인 민족대표 국사(菊士) 오화영(吳華英) 목사 3.1운동을 초교파적인 연합운동으로 이끌어간 33인 민족대표국사(菊士) 오화영(吳華英) 목사 국사(菊士) 오화영(吳華英) 목사는 1879년 4월 5일에 황해도 평산군 평산면 대촌리에서 오석조(吳錫潮)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향리에서 한문을 배우고 한때는 동학난에 가담하여, 1891년에는 잠시 만주에서 망명생활을 한 적도 있다. 귀국하여 1901년부터는 구한국 정부의 우정판사(郵政判事)라는 관직에 있은 적도 있으나 2년 뒤 이를 사임하고 1911년까지 향리에서 장사도 하고 농사도 했다.국사 선생이 기독교 신자가 되기는 향리에서 장사와 농사를 할 시기인 것 같다. 그리고 1918년에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제 6회로 졸업했는데, 목회를 시작하기는 이보다 6년 전인 1912년부터이며, 1916년부터 3년 간 원산.. 2018. 12. 4.
YMCA 인물 34. 민족의 장래를 청년에게 걸었던 3.1운동의 33인 민족대표 월당(月塘) 최성모(崔聖模) 목사 민족의 장래를 청년에게 걸었던 3.1운동의 33인 민족대표월당(月塘) 최성모(崔聖模) 목사 월당(月塘) 최성모(崔聖模) 목사는 1874년 1월 9일에 서울 안국동에서 최영칠(崔永七)씨의 독자로 출생했다. 3백년 이상 서울 북촌에서 살아온 선비의 가문에서 태어난 월당은 15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할 생각은 없고 그저 집에 들어앉아 책이나 읽으면서 청년기의 울분을 달래었다. 그러다가 28세 되던 해 어느날, 친구 이필주(李弼柱, 33인 민족대표)씨와 함께 상동교회 문 앞을 지나다가 연설회 광고문에 이끌리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 날부터 두 청년은 그 교회의 전덕기(全德基)씨를 알게되었고, 그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어 상동교회의 교인이 되었다.YMCA회원이 된 것은 1906년쯤부터인가 싶다.. 2018. 12. 4.
YMCA 인물 33. 덴마크식 농촌운동의 개혁자 청만(晴巒) 이기태(李基台) 선생 덴마크식 농촌운동의 개혁자청만(晴巒) 이기태(李基台) 선생 청만(晴巒) 이기태(李基台) 선생은 1894년 6월 7일에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을 닮아 전형적인 한국의 선비 그대로의 천성과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학문과 글쓰기를 즐겼다. 담담하고 조용한 그의 일상생활은 극히 평범했으나 도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으며, 두드러지게 사회에 나타나는 일이 없었어도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YMCA와의 관계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활발히 촉진되었던 덴마크식 농촌운동에 가담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청만 선생은 빈틈없는 문필가로서 YMCA 기관지인 청년(靑年)에다가 ‘농촌으로 가자’라는 제목의 글을 썼으며, ‘정밀의 농업’이라는 논문을 9회나 연재하기도 했다.청만 선생은 정열과 지식을 겸.. 2018. 12. 4.
YMCA 인물 32. 한국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찌(會田嘉伊智) 옹 한국 고아의 아버지소다 가이찌(會田嘉伊智) 옹 소다 가이찌(會田嘉伊智) 옹은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고아들을 위한 사업에 헌신한 사회사업가이며 교육자이다. 1867년 10월 20일에 일본 야마구찌겐(山口縣)에서 태어난 그는 20세가 되던 해부터 고향을 떠나 방랑생할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양문명의 창구 구실을 했던 나가사끼(長琦)항의 탄광에서 광부일을 하면서 고학하던 것을 비롯해서 25세부터는 노르웨이 화물선 선원이 되어 홍콩에서 수년간 식민지로서의 생활을 겪었다. 그리고 29세에는 대만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당시의 대만도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이다. 그곳에서 독일인이 경영하는 제조공장에서 통역을 하다가 32세 되던 해에 중국본토에 가서 일본군대의 군속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 2018. 12. 4.
YMCA 인물 31. 재일본 한국Y 2대 총무 해온(解溫) 백남훈(白南薰) 재일본 한국Y 2대 총무해온(解溫) 백남훈(白南薰) 백남훈(白南薰) 선생의 아호는 해온(解溫), 1885년 11월 3일 황해도 은율군 장연면 서부리 176번지에서 탄생, 83세의 고령으로 1967년 6월 28일에 이 세상을 떠나신 분이다. 교육가, 정치가, 사회운동가로서도 찬란한 경력을 가진바 있는 그가 YMCA와 관계를 갖게 된 것은 1909년에 선생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부터였다. 선생은 25세 되던 해에 도쿄의 명치학원(明治學院)에 입학하여 1913년에 졸업하고, 다시 와세다(早稻田) 대학 예과를 거쳐 1917년에 동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도쿄에 가자 곧 재일본 한국YMCA(원명은 재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의 총무 김정식(金貞植) 선생의 안내로 그 회원이 되는 동시에 때마침 일본 유학생 전.. 2018. 12. 4.
YMCA 인물 30. 육정수(陸定修 또는 陸定洙) 선생 육정수(陸定修 또는 陸定洙) 선생 육정수(陸定修 또는 陸定洙) 선생의 아호는 삼전(三田), 본관은 옥천(沃川)이다. 1885년 2월 25일, 충청북도 옥천(沃川)에서 명문거족인 육(陸)씨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그(故 陸英修 여사의 사촌오빠)는 12세 때인 1896년에 서울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마침 독립협회가 창설되었으므로 학당 안에서 서재필(徐載弼), 윤치호(尹致昊) 등으로부터 신문학과 의회헌법, 만국공법(萬國公法, 즉 국제법), 영어 등을 배웠다. 그 당시의 동창생으로서는 이승만, 신흥우, 여운형, 정교, 양홍묵, 오긍선 등 명사들이 많았는데, 이들로 학교 안에 협성회(協成會)가 조직되었을 때에 그는 창설회원의 한사람으로도 활약했다.YMCA운동에 그가 처음으로 가담한 것은 1901년 배재 대학부 학.. 2018. 12. 4.
YMCA 인물 29. 계병호 선생 계병호 선생 계병호 선생은 1896년 10월 14일 평북 선천면(宣川面) 당골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기독교 신자가 되어 당시 평북 지방의 유명한 기독교학교이던 선천 신성학교(信聖學校) 졸업생의 영광을 입게 되었다.신성학교는 1906년 장로회 선교회 사업으로 창설된 학교로서 1912년 105인 사건 때에는 가장 문제가 되었던 학교이다. 다시 말해서 105인 사건은 제1대 조선총독 데라우찌(李內正毅)란 자가 한국기독교 세력을 뿌리뽑기 위하여 수 백 명의 기독교인들을 검거했다가 그중 105명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던 사건이다. 1910년 11월 5일 압록강 철교의 가설공사를 마치고 그 준공식에 참석하러 가는 데라우찌 총독을 민족주의자들과 학생들이 만주 안동(安東)에 사람을 보내 권총을 사다가, 선천 신.. 2018. 12. 4.
YMCA 인물 28.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산업교육을 담당한 YMCA 초창기 공업부 간사 그레그(George A. Gregg, 具禮九)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산업교육을 담당한 YMCA 초창기 공업부 간사그레그(George A. Gregg, 具禮九) 그는 캐나다 사람으로서 1906년 가을에 한국에 와서 황성기독교청년회 공업 간사가 되어 1928년까지 봉직했다. 한평생 독신생활로 일관하면서 온 정력을 YMCA에 바친 그는 성품이 아주 충직하고 부지런하며 믿음이 아주 신실한 분으로서 한평생 평신도로 교회에 헌신하였다. 처음에 그는 미국에 가서, 뉴욕에 있는 어느 철도회사의 기술자가 되었다. 거기서 몇 해 동안 일하는 동안에 인정을 받아 하트포드 공업학교(Industrial Institution in Hartford)의 교장이 되었다가 다시 YMCA 국제위원회의 요청으로 산업교육부 전문 간사가 되었다.한국에 오게 된 동기는 그가 YMCA 국제위.. 2018. 12. 4.
YMCA 인물 27. 한서(翰西) 남궁 억(南宮 億) 선생 한서(翰西) 남궁 억(南宮 億) 선생 그는 언론인․시인․애국투사․YMCA이사를 역임하였고 아호는 한서(翰西)이다. 1863년 12월 27일 서울 태생으로서 일제가 보기 싫어 강원도 홍천국 보리울이라는 곳에서 숨어살다가 1939년 4월 5일에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업적을 몇 가지만 든다면, 첫째, 1896년 독립협회 창설에 가담한 것과 1898년부터 황성신문(皇城新聞)을 창간한 것을 들 수 있다. 국가의 문화발전과 사회계몽을 위해서는 일간신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황성신문의 사장 겸 주필이 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옥고도 치루고 정간도 여러 차례 당했지만 이 신문의 공헌은 우리나라 근대화에 있어서 빛나는 것이었다.둘째는 선생의 공헌을 그의 교육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생은 1.. 2018. 12. 4.
YMCA 인물 26. 일생을 소년들과 함께 살아온 정성채(鄭聖采) 선생 일생을 소년들과 함께 살아온 정성채(鄭聖采) 선생 정성채(鄭聖采) 선생은 1899년 9월 1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수업하던 중 불려나와 1921년부터 YMCA 소년부 간사가 됨으로부터 1950년 6.25전란으로 납북되기까지 거의 일생동안 Y안에서, 또한 Y주변에서 살아온 Y맨이며, 더욱이 정성채 선생은 소년들과 함께 살아온 지도자이다.그는 YMCA 소년부 간사로 있던 당시에 중앙학교 교사인 조철호(趙喆鎬)씨와 함께 주동이 되어 1922년 10월 5일에 소년군 또는 소년척후군이라는 운동단체를 창설했다. 이 소년군은 1908년 영국의 베이든 포웰(R. Baden Powell)장군이 창설한 보이스카웃이란 단체로서, 15~18세 소년들을 중심으로 단체생활을 통해 .. 2018.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