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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704

"진리가 거짓을 거부하는 일이라면 자유는 억압에 저항하는 일." ‎"보잘 것 없는 정권들이 설득력도 없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으며, 지성은 증오와 억압에 봉사하는 시녀가 되었다." "진리가 거짓을 거부하는 일이라면 자유는 억압에 저항하는 일." "진리는 신비로운 것이며 손에 잡히지 않고 달아나는 것이며 언제나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다. 자유는 위험한 것이며 우리를 들뜨게 하는 만큼 제대로 누리기도 어렵다." - 1954년 이탈리아를 방문한 카뮈의 연설 원고 '예술가와 그의 시대'. 정수복 박사의 '프로방스의 완전한 휴가'에 나오는 귀절. 그런데 '프로방스에서만 삶의 여유와 성찰이 가능한가?'라고 괜히 트집잡고 싶네요. 어제 읽은 책에서는 네팔의 안나푸르나를 말하는 구절이 조금있어 그것도 배가 아팠는데. 오늘은 온통 프로방스 이야기니.... 2011. 6. 19.
한국YMCA전국연맹 유지지도자 연찬회 자료집, '예수의 눈으로 생명평화세상을 노래하자' '예수의 눈으로 생명평화세상을 노래하자'라는 주제로 6월 10일부터 11일까지, 경기도 화성 라비도콘도에서 양일간 개최된 한국YMCA전국연맹 유지지도자 연찬회 자료집을 나눕니다. 자료집에는 "밀양과 한국교회"라는 제목의 채수일 한신대총장님의 개회예배 설교 말씀, '생명평화세상을 위한 YMCA의 소명과 비전'이라는 주제의 김영주 KNCC 총무님의 주제강연문, '생명평화의 하나님나라운동과 에큐메니컬운동'이라는 제목의 서광선박사님의 성서연구 자료 등이 실려 있습니다. 목 차 ❚함께 읽는 시 : 조율 ------------------------------------ 4 ❚2011년 한국YMCA 지도자 연찬회 개요 ------------------------ 6 ❚평화예배 ----------------------.. 2011. 6. 12.
좋은 스승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그 자체로 배움입니다. 자메이카 시간으로 이제 밤 11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저녁식사하고 컴 앞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같이 온 멤버들은 피곤에 지쳐 쓰려져 있습니다. 오늘도 아침 5시 부터 일어나 강행군을 했기 때문에 뜨거운 동네에서 치루는 하루 일정은 더욱 피곤함을 느끼게 합니다. 김용복박사님은 하루 일정을 마치시고 매일 밤 참가 멤버들과 함께 다음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제 김박사님도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 김박사님의 열정은 젊음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저만 멀쩡하게 튼튼한 것 같지만, 사실 저는 낮잠을 조금 자 놓은게 있거든요..하!하!. 이러면 땡땡이인가? 글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단지 지식으로 이해하는 수준에서의 논의가 아닌 감성과 공감, 그리고 마음에서 배움을 불러일으키는 과.. 2011. 5. 17.
'어떻게 먹고 사냐?'라는 어머니의 다음 질문을 듣고 싶습니다. 고향 시골집 마당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개구리와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소의 몸짓을 친구삼아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와 형과 함께마신 소주 한잔이 오늘 따라 유난히 달콤하기도 하고 취기도 있네요.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의 흔한 이야기지만, 한 가정을 책임져 온 80을 바라보는 촌 무지렁이로 늙은 어머니의 손결을 다시 느껴봤습니다. 위대한 손결이고 훌륭하고 따뜻한 숨결이십니다. 감사한 손이고 미소이십니다. 어머니의 한 말 씀, "어떻게 먹고는 사냐?". 나이 40 넘어 무책임할 정도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에 평생을 자식과 가족을 책임지며 살아오신 노인의 눈 그림자에 비친 자식의 모습이 안타까운가 봅니다. 그 눈 빛이 지금 함께 삶을 살아가는 이의 눈가에도 어른거림을 느낌니다. 이제 먹을거리를 고.. 2011. 5. 8.
근래 겸손이라는 말이 얼마나 실천적이고 어려운 말인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근래 겸손이라는 말이 얼마나 실천적이고 어려운 말인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삶의 태도를 만들어가는데 있어 '책임'이라는 말과 함께 생각해보는 말인데요, 항상 실패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필요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모든 관계의 힘이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소개한 한 책의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두 도성" "두 가지 사랑이 두 개의 도성을 만든다. 하나님을 배제하는 자기 사랑이 지상의 도성을 만들고, 자신을 배제하는 하나님 사랑이 천상의 도성을 만든다. 지상의 도성은 자신을 높이고 천상의 도성은 하나님을 높인다. 지상의 도성은 인간의 칭찬을 구하고, 천상의 도성에는 양심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이 가장 큰 칭찬이다. 지상의 도성은 머리를 빳빳이 든 채 자기 영광을 구하고.. 2011. 3. 4.
신문지상의 사기꾼이 차리리 귀엽다! 운전 중에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30초도 들을 수 없는 방송을 들었다. 우리가 아는 사기꾼이 귀염다는 생각이 들 정도!! 지역 기독교 방송인 것 같은데.. 내용인 즉슨, 이렇습니다. 목사님 왈, "제 이야기를 들으며 맘 아프셨다는 분들이 계신데 맘 아파하지 말고 누르세요. ... 자식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건강하게 해주시고 하는 일 다 잘되게 해주시고 목사를 기쁘게하는 자식이 되게 해주시고, 교회에서 인정받아 요직을 맡게해 주시고.. 천년만년..아멘합니다. 아멘하셨죠? 자식의 이름으로 ARS로 헌금하겠습니다. ... 10만원도 좋고 100만원도. 아멘하시고 ARS를 안누르면 하나님이 안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소홀히 대할 수 있냐고.. 그 몇푼이나 한다고 안누르세요." 이것이 한국 기독교의 헌.. 2011. 2. 25.
지역의 청년 지도력이 없어요 작은 지역에서 전업으로 단체 일을 하는 것은 재정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가장 큰 것은 함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 일하고자 하는 비전이 있다고 해도 생활인으로 최소한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재정적인 뒷받침을 만들어내기 어렵고, 닭이 먼전지 알이 먼전지 모를 정도로 이제는 지역에서의 꿈을 꾸는 청년들을 찾기 쉽지 않다.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젝트 경영자가 되어야하는 현실에서 꿈과 비전을 말하기는 또 쉽지 않다. 어디서부터 풀어야할까? 지역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 비정부기구에 60 넘은 사람들만 남아있는 일본처럼 이미 한국 시민단체 또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고 젊은 청춘들의 패기는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2011. 2. 25.
SNS 바다를 헤매며 내린 효과적인 SNS 이용을 위한 잠정적 결론?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을 이용하면서 그동안 많이 헤맸습니다. 지금도 헤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 맞겠죠. 블로그 네트워크에 관심할 때는 블로그 중심의 글쓰기를 해볼까 하다가 방치하기도 하고(블로그 사이트 선택에도 한참 방황했답니다.), 페이스북의 기동성에 반해 페북을 이용하면서 웬지 파급력이 좀 작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트위터를 또 열심 파보고. 트위터를 하면서 이건 또 웬지 기동력과 파급력은 좋은데 친한 맛이 안나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주절거리는 것도 적성에 안맞는 듯하고.. 그러다가 다시 페이스북의 그룹과 페이지 기능에 다시 빠져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래 저래 시간 투자를 해보고. 나누고 싶어하는 주제는 나름 분명한 것 같은데, 어떤 SNS 툴을 기본으로 해서 여타.. 2011. 2. 15.
아름다운 만남을 위한 오작교, SNS 이 글은 페이스북 개인페이지에 올렸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이윤희/yunheepatos 2011년 2월 8일 화요일 오후 4:06 아름다운 만남을 위한 오작교를 놓기 위해 새해 벽두 야심작으로 던진 페북 그룹핑. 사람들이 난리다. 폭탄 멜에 죽것단다. 페북이나 트윗이나 SNS를 통해 어떻게 소통하고 네트웍하며 소망을 나눌 것인가?, 그 방법으로 페이지와 그룹을 생각해보고 그룹핑을 해봤다. 사실 페북에서 처음에 제공되었던 그룹 기능보다 좋아진 것 같아 실험해봤는데, 폭탄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성공작인 듯하다. 예전 바쁜 직장생활 과정에서도 밤마다 만나기에 힘썼던 '청년Y 사람들', 지역Y 선후배들과 청년Y 선후배들, 기독학생 선후배들을 초청한 '대학Y를 돕는 사람들'. 새해 벽두에 인사를 나눌 수 있.. 2011. 2. 15.
삶의 마지막에 생각하는 정갈한 삶? 페이스북 개인페이지에 올렸던 끄적거림입니다. 이윤희/yunheepatos 2011년 2월 5일 토요일 오전 10:36 누가 내 인생을 '정갈한 삶'이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어제 밤 그냥 든 생각이다. 이제는 가끔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어리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 때인 것 같은데!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무게가 더해지는 것 같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 지금의 나에게 몰려오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마지막에 풍기는 향내는 무엇일까? 세상에 보내진 편지로, 그리스도의 향기로 보내어진 삶이라 말하지만, 그건 사이비 크리스찬으로서의 내 고백이고, 진짜는 무엇일까? 이런 생각에서 머무른 것이 '정갈한 삶이다'. 정갈한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느낌... 2011. 2. 15.